
정찬훈 자서전
자서전
이루어 가는 사람의 발자취
서울책방
목 차
PROLOGUE
나는 빠르게 오른 사람이 아니라,
찬찬히 옮겨온 사람이다
돌아보면 나는 한 번에 크게 오른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를 단숨에 뒤집거나, 남들이 놀랄 만큼 빨리 앞서간 적도 많지 않다. 대신 나는 찬찬히 옮겨왔다. 한 칸씩, 내 손에 잡히는 만큼만 움직였다.
어릴 때는 그게 성격인 줄 몰랐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집 안은 늘 조용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 알았다.
없는 티를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부터 붙잡고, 안 되는 길 앞에서는 오래 서성이지 않는 것.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나중에야 그게 내 방식이라는 걸 알았다. 버티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방식. 억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방식. 한 번에 많이 가지 못하더라도 끊기지 않는 방식.
내 삶을 설명하는 문장이 있다면 아마 이것일 것이다.
찬찬히 하나씩.
처음부터 멋있게 들리는 말은 아니었다. 조금 투박했고, 약간은 쑥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맞는 말 같았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대단한 성공담이 아니다. 대신 내가 어떤 장면들 위를 건너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하동과 대구 사이에서 시작된 시간, 주머니 속 500원, 옥상의 기름통, 창이 있는 방, 리어카 위의 하늘, 민법책을 덮던 손, 일본어 문제집, 그리고 처음으로 회사라는 세계의 문을 두드리던 순간까지.
그 장면들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인생은 대체로 그런 장면들로 만들어졌다.
1 부
조용한 집에서
배운 것
하동과 대구 사이에서 자란 소년이 일찍 배운 것들 — 외로움을 견디는 법이 아니라, 혼자서도 살아가는 법.
1 장
나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나를 설명하는 곳은 하동이다. 부모님은 모두 하동 사람이었고, 시간이 지나 결국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내게 고향은 출생지보다 더 오래 남는 쪽, 마음이 기우는 쪽이 되었다.
어릴 때 집은 늘 조용했다.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보다, 누군가 늦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나, 식탁 위에서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집이 불행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따뜻함보다 먼저 생계가 앞에 있던 집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 이후로는 가족과 길게 어딘가를 함께 다닌 기억이 많지 않다.
2 장
1992년, 아버지가 산업재해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그해 겨울이었다.
그 사건은 집 안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어린 내가 그 일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알 수는 있었다. 전과 후가 다르다는 것. 어른들의 표정이 달라졌고,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
나는 그 시절부터 어른들의 사정을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집 안의 분위기를 보는 습관, 내 필요를 뒤로 미루는 습관이 그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눈치를 빨리 배웠고, 상황을 읽는 힘도 생겼다.
3 장
나는 돈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간식을 사 먹자고 하면,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동전 하나가 손에 잡혔다. 500원이었다. 꺼내지는 않았다. 그냥 쥐고 있었다. 없는 게 아니라 안 쓰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주머니 속의 500원은 내게 이상한 의미를 가졌다.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안에 쥐고 있으면 마지막 선택권 하나는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자주 가난을 숫자로 기억한다. 그런데 내게 가난은 그보다 더 몸에 가까운 감각으로 남아 있다. 주머니 안에서 차갑게 만져지던 500원의 표면, 사 먹지 않는 쪽을 택할 때의 잠깐 멈춘 손.
4 장
중학교 2학년이었다. 집에 기름이 떨어졌다. 우리는 한 번에 가득 채우지 못했다. 기름통을 들고 조금씩 사 와서 부었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기름통을 들었다. 나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더 들고 싶었다. 그런데 공기가 들어가라고 열어둔 구멍 사이로 기름이 흘렀다.
어머니가 짜증을 냈다. 그전에는 거의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잊지 못했다. 가난은 조용히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냄새를 남기고, 소리를 내고, 사람 표정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
잘살고 싶다는 말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풍족함을 꿈꾼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생활을 원했다.
2 부
처음으로
내 삶을 고르다
서울로 올라와 혼자 방을 구하고, 리어카로 이사하고,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시간.
5 장
경희대학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방을 구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창이 있는 방. 2만 원이 더 들었지만, 그걸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택은 생활 조건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내 기준을 처음 세운 일이었다. 누가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내가 정한 기준.
고시원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던 15분.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울 때, 나는 그 길을 걸었다. 그때의 나는 이상하게 가벼웠다. 내가 선택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6 장
뒤늦게 같은 학교에 합격한 친구가 올라왔다. 친구는 창 없는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함께 살기로 했다.
이사는 단출했다. 학교에서 빌려온 리어카에 짐을 싣고, 친구까지 태웠다.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지나가던 날, 하늘이 밝았다. 괜히 더 밝게 보였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옮길 수 있고, 서툴러도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양보다 방향이었다. 리어카는 느렸지만 분명히 앞으로 갔다.
그 하늘이 유난히 밝게 보였던 이유를 나는 아직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다만 알 수는 있다. 그날의 나는 희망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7 장
돌이켜보면 나는 버티는 쪽의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하나씩 시작했다.
2006년, 군 복무를 마치고 참여한 데일 카네기 코스에서 나는 내 이름으로 문장을 하나 만들었다.
"찬찬히 하나씩 이뤄가는 훈훈한 남자"
적고 나서 조금 웃겼다.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붙이는 일이 쑥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맞는 말 같았다.
그 문장을 지나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내 인생을 설명하는 핵심은 '버팀'보다 '시작'에 가까웠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자 내 삶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생각보다 즐거운 날이 많았다.
3 부
덮을 줄
아는 용기
사법고시 합격기를 읽다 멈추고, 민법책을 덮고, 일본어 문제집을 집어든 날의 이야기.
8 장
법대를 다니면 자연스럽게 사법고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도 그 흐름 안에 있었다.
교수님이 합격기를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바로 책상에 앉지 않았다. 합격기부터 모았다. 읽고 또 읽었다.
공부 방법은 많았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건 다른 문장이었다.
끝까지 하는 사람. 죽을 것처럼 아파도 다시 앉는 사람.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봤다. 나는 오래 버틸 것 같지 않았다.
그 판단은 비관이라기보다 관찰에 가까웠다. 그래서 먼저 군대를 갔다.
9 장
군대에서도 책을 놓지는 않았다. 민법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한 책을 구해서 읽었다. 하지만 읽는 동안 조금씩 알게 됐다. 나는 긴 싸움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역을 앞두고, 나는 결정을 했다. 사법고시를 접는다.
그날, 책을 덮었다. 읽고 있던 민법책이었다. 그리고 서점으로 갔다.
일본어 문제집을 샀다. 1급이었다.
그게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방향이 바뀌었다.
인생에서는 덮을 줄 아는 힘도 중요하다. 아닌 것을 오래 끌지 않는 힘. 아깝더라도 멈출 수 있는 힘. 그 힘이 있어야 다음 길이 열린다.
10 장
사람들은 방향을 바꾸는 일을 쉽게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이미 쏟아부은 시간과 주변의 기대, 나 스스로 품고 있던 이미지까지 함께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싸움에서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어떤 리듬에서 더 오래 갈 수 있는지를 보려고 했다. 그리고 결론은 분명했다. 나는 구조를 빨리 읽고 필요한 것을 쌓아 다른 쪽으로 옮겨가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건 도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냉정한 선택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내 삶에서 중요한 결정들은 대부분 이런 구조를 갖고 있었다.
무작정 오래 끌지 않는다. 판단이 서면 바꾼다. 바꿨으면 다시 쌓는다.
4 부
다른 길에서
증명하다
법대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보도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갔다.
11 장
전역하기 전까지 일본어를 봤다. 시험을 봤다. 합격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법대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보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연합 취업 동아리에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단순히 취업 정보를 얻으러 간 것이 아니라, 채용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까이서 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늘 환경을 기다리는 쪽의 사람은 아니었다. 길이 없으면 길이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정보가 없으면 정보가 모이는 자리로 갔다.
12 장
연합 취업 동아리에서 나는 단순히 참가자로 머물지 않았다. 행사를 만들었다. 기업 인사담당자를 불렀다. 학생들을 모았고, 면접을 만들고, 자기소개서를 평가하는 과정에 함께 있었다.
어떻게 뽑는지, 무엇을 보는지, 어디서 갈리는지. 이 세 가지는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채용에도 언어가 있다는 걸 알았다. 기업이 듣고 싶어 하는 언어, 지원자가 자기 경험을 번역해야 하는 언어.
돌아보면 나는 이때부터 '노력'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했다.
노력은 오래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하는 것도 노력이다.
13 장
채용의 구조를 보기 시작한 뒤, 나는 필요한 것들을 차례로 쌓아 나갔다. 자격증을 준비했고, 경험을 만들었고, 내가 어떤 식으로 평가받는지를 의식하면서 움직였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 하지만 다르게 쌓았다.
나는 이 시기에도 한 번에 크게 벌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필요한 것을 채우고,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나는 완전히 늦은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다른 경로로 오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회한 사람은 때로 지름길을 아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14 장
4학년 1학기, 삼성화재 인턴에 붙었다. 그리고 들어갔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시간이 들어 있었다. 하동과 대구 사이의 조용한 집, 주머니 속 500원, 옥상의 기름통, 창이 있는 방, 리어카, 민법책을 덮던 날, 일본어 문제집, 취업 동아리의 행사장. 그 장면들이 다 이어져 여기까지 왔다.
내게 그 순간은 단순한 합격 통보가 아니었다. 다른 길로 방향을 튼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첫 확인에 가까웠다.
그래, 이렇게 가는 거구나.
EPILOGUE
결국 나는 내 속도로 왔다
나는 오랫동안 내 삶을 대단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작은 장면들을 건너며 왔다.
어릴 때는 조용한 집에서 생활의 무게를 먼저 배웠다. 주머니 속 500원은 체면을 지키는 법을 가르쳤고, 옥상의 기름통은 내가 무엇을 원하게 될지를 결정했다.
창이 있는 방은 내 기준으로 삶을 선택하는 기쁨을 알려 주었고, 리어카 위의 하늘은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삶은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나는 남들보다 빨리 간 사람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 속도로 왔다.
찬찬히 하나씩.
이 말은 이제 단순한 다짐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앞으로도 삶을 대하는 태도다.
"버티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방식.
억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방식.
한 번에 많이 가지 못하더라도
끊기지 않는 방식."
서울책방